벼에 대한 이야기

식물명 : 벼
학명 : Oryza sativa
분류 : 화본과
원산지 : 동인도
서식장소 : 논이나 밭
크기 : 높이 1m

외떡잎식물 벼목 화본과의 한해살이풀로 동인도 원산의 식용작물로 논이나 밭에 심는다. 높이는 1m 정도이고 잎은 가늘고 길며 성숙하면 줄기 끝에 이삭이 나와 꽃이 핀 후 열매를 맺는다. 벼의 열매를 찧은 것을 쌀이라고 하며, 전세계 인구의 40% 정도가 쌀을 주식량(主食糧)으로 한다. 벼속에 속하는 식물로는 20여 종(種) 이상이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 재배되고 있는 것은 벼(O. sativa)가 대부분이다. 서부 아프리카의 일부 지역에서 O. glaberrima를 소규모로 재배하고 있으나 이는 원시적인 벼로서 최근에는 벼(O. sativa)로 대치되어 가고 있다.

벼에서 얻어지는 것은 나락(벼:正租)과 볏짚인데, 나락은 종자용을 제외하고는 도정하여 쌀과 왕겨 ·쌀겨 등으로 나누어진다. 쌀은 밥을 짓는 데 90% 이상이 쓰이고, 술 ·떡 ·과자 ·엿 등의 원료로 쓰인다. 볏짚과 왕겨는 연료 및 퇴비로 많이 쓰이나 볏짚은 가마니 ·새끼 등의 짚 세공용으로도 쓰인다. 쌀겨는 기름을 짜거나 사료 ·비료 ·약용 등으로 많이 이용된다. 쌀의 성분은 대체로 탄수화물 70∼85%, 단백질 6.5∼8.0%, 지방 1.0∼2.0%이며, 쌀 100g의 열량은 360cal 정도이다.

벼의 기원과 전파
현재 재배하고 있는 벼와 근연(近緣)인 야생벼[野生稻], 즉 벼속에 속하는 식물들은 아시아의 열대지방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및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발견되고 있으나 벼(O. sativa)의 선조가 어떤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식물학적인 유연관계로 볼 때 동남아시아에서 발견된 여러해살이 야생벼 O. perennis의 일종인 O. balunga로부터 분화(分化)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재배하는 벼(O. sativa)의 발상지는 남부 및 동남 아시아의 기온이 높고 다습한 습지대인 것으로 생각되며, 서부 아프리카에서 재배하는 O. glaberrima는 그 기원이 다른 것으로 본다. 오늘날 재배하는 벼의 순화(馴化) 및 재배는 지금부터 최소한 4,000∼5,000년 전에 인도의 갠지스강(江) 유역, 북부 미얀마 ·타이 ·라오스 ·인도차이나 ·중국 남부지역 등지에서 거의 같은 시기에 각각 독립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 곳으로부터 세계 각국으로 전파되었다고 할 수 있다.

벼의 전파 경로는 대략 다음과 같이 추정된다. 즉, 서쪽으로는 이란을 거쳐 카프카스 지방에 전해지고 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서 기원전부터 재배하였으며, 7∼8세기경에는 이 지방에서 벼의 재배가 일반화되었다. 유럽으로의 전파 경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터키를 거쳐 발칸 반도에 전파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8∼13세기경 아프리카 북부지방을 거쳐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에 전파되어 지중해 연안으로 퍼졌으며, 중국에서 직접 전파된 경우도 있다.

아프리카에 전파된 것은 기원전에 인도에서 해상로를 따라 동부 아프리카에 직접 전파된 경우, 6∼7세기경 중앙 아시아 및 고대 페르시아 지방으로부터 북부 아프리카로 전파된 경우, 서부 해안지대에서 오랫동안 자생(自生)해오던 것이 대륙으로 보급된 경우가 있다. 동부 아시아로는 중국에서 BC 2700년의 오곡설(五穀說)이 있던 것으로 보아 벼가 가장 오래 된 농작물임을 알 수 있고, 중국을 거쳐 한국 ·일본으로 전파되었다.

남쪽으로는 자바에서 BC 1084년에, 스리랑카에서는 BC 513년에 벼를 재배하였다. 남아메리카 대륙에는 16세기 초 포르투갈인에 의하여, 미국에는 1699년에 네덜란드 배에 의하여 벼가 전파되었고, 미국의 서부는 20세기 초에 극동에서 전파되었으며 오스트레일리아와 태평양제도에는 19세기 중엽에 전파되었다.

한국의 벼
벼는 한국의 농작물 중에서 가장 오래 된 농작물이다. 중국의 기록과 김해 조개더미에서 발굴된 탄화(炭化)된 쌀덩어리 및 기타 유물 등으로 미루어 보아 지금부터 약 2,000년 전에 재배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1976년 경기도 여주에서 지금부터 약 3,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탄화미(炭化米)가 발굴됨으로써 한국 벼농사의 기원이 매우 오래 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전파 경로는 분명하지 않으나 벼의 원산지 중의 하나인 중국의 남부지방에서 바다 건너 한국 남부지방으로 들어온 경우와, 중국의 중북부지방을 거쳐 육로 또는 해로(海路)로 한국 중부지방에 전파된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백제와 신라 초기의 벼농사를 기록하고 있고 삼국의 벼농사 장려기록, 연못과 제방의 수축에 관한 기록들이 있으며, 중국의 기록에도 신라의 벼농사에 관한 것이 있다.

그러나 벼의 종류에 관한 기록은 1429년의 《농사직설(農事直說)》에 수경(水耕) ·건경(乾耕) ·이앙(移秧)에 관한 기록이 있어 밭벼와 논벼를 구별한 것이 최초이며, 그 후 《금양잡록(衿陽雜錄)》에 밭벼 3품종, 논벼 24품종 등 총 27품종이 기록되어 있다. 1682년에 저술된 《산림경제지(山林經濟誌)》에는 36품종, 1771년에 간행된 《고사신서(攷事新書)》 <농포편(農圃篇)>에는 조도(早稻) 7품종, 차조도(次早稻) 3품종, 만도(晩稻) 19품종을 합한 29품종이 기록되어 품종을 생육기간별로 구분하였고, 1760∼1845년에 저술된 《임원경제지(林園經濟誌)》에는 68품종이 기록되어 있다.

1907년에 권업모범장(勸業模範場)이 수원에 설립된 후 1911∼1912년에 조사한 한국 벼품종은 메벼 876품종, 찰벼 383품종, 밭벼 192품종을 합하여 총 1,451품종이었다. 이 시대의 주요 재배품종은 미조(米租) ·노인조(老人租) ·다다조(多多租) ·모조(牟租) ·조동지(趙同知) ·남조(南租) ·흑조(黑租) 등이었다.

한국 재래종의 일반적인 공통 특성은 ① 대부분 유망종(有芒種)이고, ② 이삭의 벼알수가 많으며, ③ 대립종(大粒種)이 적고, ④ 분얼이 적으며, ⑤ 키가 커서 쓰러지기 쉽고, ⑥ 도열병(稻熱病)에 약하며, ⑦ 건조한 땅에 잘 견디고, ⑧ 저온발아력(低溫發芽力)이 높으며, ⑨ 조생종(早生種)이 많고, ⑩ 탈립(脫粒)이 쉽게 된다는 것 등이다.

1910년경부터 여러 경로를 통하여 일본에서 벼품종이 많이 도입되기 시작하였는데 30년대에는 일본에서 도입된 품종의 재배면적이 전체 논면적의 약 67%를 차지하게 되었고 이 때 가장 많이 재배된 품종이 곡량도(穀良都)였다. 한편 1917년부터 수원농사시험장에서 한국의 기후 ·풍토에 알맞은 벼품종을 육성하기 위하여 교잡육종법(交雜育種法)을 통한 적극적인 품종개량사업을 시작하여 1938년에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육성한 풍옥(豊玉)과 일진(日進)을 농가에 보급하게 되었다.

그 후 계속 새로운 육성품종이 나오게 되었고, 1960년대에는 국내에서 육성한 품종들의 재배면적이 전체의 58%를 차지하였다. 1910년대 이전에 재배되던 재래종으로부터 일본에서 도입한 품종의 보급, 국내에서 육성한 품종의 보급 등의 변화과정을 거치면서 한국의 벼품종들은 각종 작물학적 특성이 크게 개량됨으로써 품종의 수량성(收量性)도 많이 향상되었으나 이들 개량된 품종들도 도복(倒伏)에 약하고, 내비성(耐肥性)과 내병성(耐病性)이 약하여 획기적인 생산성 증대(生産性增大)를 기대하기 어려운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1970년에 육성된 통일(統一) 품종은 그때까지 재배되던 일본형 품종과는 초형(草型)과 여러 가지 특성이 완전히 달라 한국 벼품종의 큰 변화를 가져왔는데, 이 품종은 일본형과 인도형을 교잡하여 육성한 것으로서 키가 작아 쓰러지지 않고 내비성과 내병성이 강하여 많은 수량을 낼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그 후 통일품종의 단점을 개선한 유신 ·밀양 23호 ·만석 ·조생통일 등의 품종이 계속 육성 ·보급되어 1970년대 후반에는 이들의 재배면적이 총 논면적의 50%를 넘어서게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따라서 최근 한국의 벼농사는 일본형 품종과 통일형 품종이 함께 재배되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