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의 아름다운 고을 서면

         문화유적지
         culture relics

                                 고인돌 유적지 I 성경전래 유적지 I 아펜젤러 추모지 I 민속놀이  
서면고인돌 유적지

서면에는 고인돌군 유적지가 있다.
주항리 칠성바위 고인돌, 개야리 학바위 고인돌, 원두리 거북바위 고인돌 등이 그것이다.
이로써 서면의 역사는 멀리 청동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감을 알 수 있으며. 고인돌군은 서면일대에 조그마한 마을들이 많이 형성했던 곳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게 하며. 고인돌군이 있다는 것은 당시 사람이 살 수 있는 여건이 다른 지역에 비해 서면일대가 좋았음을 할 수 있다.
이는 서면 연안에서 손쉽게 채취할 수 있는 해산물과 주변 산에서 얻을 수 있는 식량원이 풍부했기 때문일 것이다.
주항리 고인돌은 북두칠성과 같이 일곱 개의 돌이 놓여 있다해서 칠성바위, 개야리 고인돌은 학을 닮았다고 해서 학바위, 원두리 고인돌은 거북이를 닮았다고 해서 거북바위 등으로 불려오고 있다.

칠성바위고인돌 학바위고인돌

주항리 칠성바위 고인돌

칠성 바위는 마을 명칭이다. 우리는 흔히 이 지역을 칠성 바위라고 부르는데, 일곱 개의 고인돌 때문에 칠성 바위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이 않다.
칠성바위 고인돌은 7개의 고인돌 중 현재 남아있는 것은 4개인데, 이중 1개 는 방치되어 있고, 2개는 매몰되어 있으며 다른 1개는 뚜렷한 고인돌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나 나머지 3개의 고인돌은 없어 안타깝다.
고인돌의 덮개돌은 그리 크지 않으며, 하부 구조가 노출되어 누가 보아도 고인돌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덮개돌 위에는 1905년에 세운 ‘강원노’애민선정비(愛民善政裨)가 세워져 있어, 그 당시가 무덤 위에 선정비를 세울 정도로 문화 유적에 대해 문외한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칠성바위 조윤횡씨택 울타리 안에 남아있는 고인돌이 유일한 칠성바위의 상징이고 서면의 역사를 입증하는 서면인의 문화 유산으로서 잘 보존해야 할 것이다.

개야리 학바위 고인돌

학바위 고인돌은 개야리 마을회관 근처에 있다. 학바위는 학이 고개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마을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불러온 명칭이다.
이 바위가 바로 개야리 학바위 고인돌 덮개 돌이다. 이 덮개돌만 보아서는 고인돌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으나 학바위 덮개돌은 고인돌의 덮개돌로 추정된다.
개야리 학바위 고인돌은 보존 가치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돌 무더기로 변해 있어 안따깝다.

원두리 거북바위 고인돌

거북바위 고인돌은 동포 마을에 있으며 이 고인돌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들이 원두리 잿뜸 마을 주변에서 발견되고 있다.
지금도 화살촉, 민무늬토기파편, 독무덤편 들이 발견되고 있는 것으로 바 큰 마을을 형성하여 살았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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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량리 성경전래 유적지

우리나라 최초의 성경이 상륙한 전래지인 마량리는 기독교적. 문화적 의미가 깊은 곳이다.
서면 마량리 산16-3 번지 일대를 마량리 한국 최초성경전래지로서의 기독교 성역화 조성을 위해 서천군과 기독교계가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7200평 규모에 성경전래역사를 전시할 종교문화박물관. 한영문화교류기념관. 명상의집 등을 건립하고 야외조각공원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마량성경전래지 전래지조감도

영국 함선의 마량진(馬梁鎭) 도래와 기독교적·문화적 의의

서면 마량리(옛지명 마량진)가 저명한 학자들의 고증을 통해 의심 없이 한국최초 성경전래지임이 확인되었다. 조선 서해안 해안도작성의 임무를 띠고 내항했던 영국군함 알세스트 (Alceste)호의 함장 맥스웰 대령과 리라호(Lyra) 의 함장 바실 홀 대령이 마량진 참사 조대복에게 성서를 전해준 것이 한국 최초 (1816년 9월 5일)에 성경 전래가 된 것이다. 이 사실은 조선 순조 실록에서도 입증하는 기록을 담고 있다.
서면 마량진을 통해서 조선 땅에 성경책이 최초로 전래된 것은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그 종교적 의미가 상당하다 할 수 있다.
또한, 영국의 맥스웰과 바실 홀의 서해탐사일지를 살펴보면 대청군도에서 처음 본 조선인들의 인상은 무뚝뚝하고 쌀쌀한 표정을 지닌 놀랄만한 호기심도 없는 고만((高慢) 한 태도를 지닌 족속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마량진에 도착하여 참사 조대복을 대면하면서 긴 수염을 하고 굉장한 옷을 입고 예의 바른 태도와 인품에 깊은 감동을 받아 자기들과 전혀 다른 환경에 놓여 있는 그 사회의 문화가 무시 못할 만큼 높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우리민족의 문화적 우수성을 외부에 인식시킨 계기가 됐다는 측면에서 문화적 관점에서도 그 역사적 의미가 크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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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펜젤러선교사 추모지

아펜젤러의 순직 장소는 서천 앞 바다의 어청도(오세이도:일본식 이름) 부근으로 어청도에서 제일 가까운 육지(어청도에서 마량진까지는 약48Km, 군산까지는 72Km)인 마량진을 추모지로 하여 기념하고 있다.

아펜젤러추모비 추모비문

아펜젤러 선교사는 한국 감리교회 최초의 선교사로 복음 증거를 위한 노력뿐 아니라, 한국 근대사와 교육사, 독립운동사에서 많은 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성경 번역 차 1902년 6월 11일 인천에서 목포행 기선 구마가와마루를 타고 가던 중 오세이도(어청도의 일본이름)부근에서 같은 회사 소속 기소가와마루와 충돌사고가 있었다.
이때 아펜젤러 선교사는 구조될 수 있었지만 함께 성경 번역을 위해 동행하던 조한규와 정신여학교 교장 도티로부터 부탁받아 동행케 된 목포가 집인 여학생을 구출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순직하신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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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놀이

띠뱃놀이
해안 일대에 전승되는 놀이 겸 집단 제의로서 음력 정월 초에 풍어와 행상에서의 안전 조업을 위하여 거행되는 의식이다.
해가 바뀌고 나서 첫 출어 전 정월에 좋은 길일을 정하여 마을 사람 모두가 목욕 재계하고 미리 마련한 음식을 산신당에
진설하고 산신제를 올린다.
이 제가 끝나면 농악을 치면서 바닷가로 내려와 용왕제를 지낸다. 이어서 강남 신령기, 영기 등 각 어선의 뱃기를 선두로
열을 지어서 석석이굿, 기굿이 벌어지고 무당, 화주, 어부들이 농악에 맞추어 춤추면서 노래를 부른다. 숯검정을 칠한 원화장이 용왕 밥을 든 가마니를 지게에 지고 나오면 농악은 절정에 달한다.
이 때 화주와 무당이 용왕 밥을 바다에 던지고, 어부들은 바다를 향하여 여러 번 재배를 한다. 젊은 장정들이 띠배를 메고 나오면 각종 기와 농악대가 띠배를 빙빙 돌며 춤과 노래를 계속한다.
띠배에는 사령기를 비롯하여 많은 기가 꽂히고, 갓쟁이, 언청이 등의 허수아비가 세워진다. 농악이 울리는 가운데 띠배가 서서히 바다에 띄어지면 남녀 노소 모두가 띠배를 향하여 재배를 계속한다.
띠배가 보이지 않게 되면 절을 그만두고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춤과 노래를 즐긴다.

띠뱃놀이 당제

당제
약 500년 간 지속되고 있으며 동백정에서 음력 정월 초 사흩날에 모여서 제를 지낸다.
어부들이 흰옷을 입고 참여하여 정성을 다하여 제를 올린다. 이렇게 하여야만 1년 내내 마을이 편안하고 풍어가 된다고
한다.
따라서, 이 당제는 용왕제의 성격을 띤 제의식이다.